20 X 27
Byungtak Oh
19 DECEMBER 2024 – 24 JANUARY 2025
눈 컨템포러리는 2024년을 마무리 짓고 2025년 새해를 맞이하는 전시로 오병탁의 개인전 <20 x 27>을 준비하였다. 작가의 두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오병탁 회화의 출발점이자,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종이 드로잉 104점과 드로잉을 기반으로 완성시킨 캔버스 페인팅 4점을 함께 선보인다.
오병탁의 회화는 <종이 드로잉>과 <캔버스 페인팅> 이렇게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다소 수행적인 태도로 일정한 크기(20 x 27cm)의 화지 위에 드로잉 작업을 수년간 지속해 왔다. 이렇게 수 년간에 걸쳐 나온 종이 드로잉들은 그 자체가 독립적인 하나의 완전한 작업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는 캔버스 페인팅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작가는 수십 장 또는 수백 장의 드로잉을 벽면에 한가득 붙여 놓은 후(이는 마치 줄눈조차 보이지 않도록 빈틈없이 타일을 붙여 놓은 듯한 형상이다), 그 광경을 응시한다고 한다. 어디 한군데 벗어날 틈을 주지 않고, 드로잉들로 빽빽하게 채워 놓은 눈 앞의 모습을 작가는 스스로 “landscape” 라 명명하며,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아닌,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드로잉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렇게 수많은 드로잉들을 도열해서 구축해 놓은 그 만의 세상 안에서 마치 풍경화를 그리 듯 유화물감을 이용하여 페인팅 작업을 해 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페인팅은 처음에 대상으로 삼았던 드로잉들의 구상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강렬함과 압도적인 힘을 발산하는 추상의 모습으로 재현되곤 하였다. 2022년 갤러리175에서의 첫 개인전과 그 이후 몇몇의 그룹전에서는 이러한 추상 페인팅이 주를 이루곤 하였다.
이번에 눈 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2번째 개인전 <20 x 27>은 그간 주로 선보였던 추상 페인팅이 아닌, 오병탁 회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로잉 작업, 하나하나에 집중하고자 한다. 큰 덩어리로 묶이기 이전, 각각의 드로잉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특징을 발견해 보자는 것이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이다. 작가는 학부 졸업 직후, 직업 군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회화의 끊을 놓지는 않았지만, 오롯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가 작업을 이어갈 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20 x 27cm 크기의 종이 드로잉이었다. ‘군 회의록’과 엇비슷한 크기인 20 x 27cm의 화지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병탁을 ‘장교 오병탁’인 동시에 ‘작가 오병탁’으로도 존재할 수 해준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종이 드로잉은 제대 후 대학원 시절, 그리고 전업작가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처음에는 ‘소지의 용이성’을 이유삼아 20 x 27cm의 화지가 선택되었지만, 지금에 이르러 이 작은 화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한된 조건 하에서 한계를 넘어서고, 그 이상의 것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규정된 크기의 화지는 마치 모바일 폰의 화면처럼 그 끝과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무한 증식이 가능한 표현의 장인 것이다. 오병탁은 그만의 회화적 감성으로 이 작은 화지 안에 무한의 등장인물을, 사건을, 기억을, 감각을, 그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을 날 것의 느낌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3000여 점의 드로잉 중에 선별된 104점 드로잉을 근경에서, 드로잉 기반으로 완성시킨 4점 페인팅의 원경에서 감상함으로써, 오병탁 회화와 조우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